뒤에 보이는 것이 제 뇌종양이었습니다.
멋있지 않나요?
(웃음)
중요한 점은 "이었다"는 것입니다.
휴.
(박수)
뇌종양에 걸린다는 것은 상상하시는 대로
저에겐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전 암에 대해 하나도 몰랐어요.
서양 문화에선 암에 걸렸을 때
마치 당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복잡한 인간이라는 당신의 삶이
의료 데이터로 대체되는 거죠.
당신의 사진, 진단, 검사 결과,
약물 목록입니다.
또한 모두가 변합니다.
당신은 갑자기 다리의 질병이 됩니다.
의사들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몸과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시작하죠.
사람들도 변하기 시작하여
인간을 대하기 보다는
병을 대하기 시작하니까요.
그들은 "의사가 뭐래?" 라고 묻죠.
"안녕"이라고 하기도 전에 말이에요.
또한 그 사이에
당신은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 질문을 갖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나?"
라는 질문들이죠.
내가 암에 걸린 동안
일을 할 수 있나?
공부는? 사랑은 나눌 수 있나?
창의적일 수 있을까?
그리고 궁금해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서 이렇게 됐지?"
또 "내 생활 방식을
바꿀 수 있나?" 라고 묻습니다.
"뭐라도 할 수 있나?"
"다른 선택은 없나?"
라며 궁금해합니다.
당연히 의사들은 이 모든
상황에서 좋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주 전문적이고
당신의 치유에 전념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은 환자들을
대하는데 아주 익숙해요.
그래서 가끔 이 일이 당신에게
고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죠.
그리고 당신이 말 그대로
환자가 된다는 사실도 잊죠.
"환자"의 의미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웃음)
많은 게 변하지만 사실,
그들은 당신의 상태를 알아가는 데에
당신을 끌어들이려 하지 않고
당신의 친구와 가족을 끌어들이거나
혹은 당신의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려 합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의
위험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요.
그 대신 당신은 매우
전문적인 낯선 이들 사이에서
강제적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제 암 사진을 달라고 하였고
그것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보통 자신의 암 사진을
달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얻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사진한테 말을 걸고
"그래, 암아. 네가
나의 전부는 아니야.
난 이 이상이야.
어떤 치유가 되든 내 전부를
상대해야 할거야." 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전 의료 소견을
얻고 병원을 떠났습니다.
전 제 암과 저의 관계를
변화시키기로 하였고
수술처럼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제 암에 대해 더 배우기로 결정했어요.
전 예술가입니다, 제 일에
여러가지 오픈 소스 기술들과
공개 정보를 사용하지요.
그래서 저의 최선은 모두
공개하고 모든 정보를 얻고
그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라 큐라 (La Cura)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그 곳에 제 의료 자료를
온라인 공개했죠.
사실 해킹해야 했어요.
이 얘기는 다른 자리에서 할게요.
(웃음)
제가 라 큐라 (La Cura)--
이태리어로 "치유"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문화에서
"치유"라는 말은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저희 서양 문화에서
이 뜻은 병을 근절하거나
뒤집는 걸 의미하는데
다른 문화에서
예를 들어 동양 문화,
지중해 문화, 라틴계 나라,
아프리카 등에선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저는 의사들과
의료인들의 의견에 관심이 갔지만
그러면서 또한 예술가의, 시인의,
디자이너의,
또, 다른 누구, 음악가들의
치유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치유와
정신적 치유,
영적인 치유,
정서적 치유,
다른 형태의 치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어요.
라 큐라 (La Cura) 웹사이트는
전염적이었어요.
이태리와 다른 나라에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재빠르게 50만개 이상의
이메일, 소셜 네트워킹을
통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이 제 암을 치료에
관한 의견이었지만
그보다 많은 것들은 제 자신을
완전한 인격체로써의
치유에 대한 의견이었어요.
예로, 수천가지의 비디오 영상,
그림, 사진, 예술 행위들이
라 큐라 (La Cura)를 위해
제작되었어요.
다른 예로, 여기
프란세스카 피니의 공연입니다.
혹은, 예술가 패트릭 릭티는
제 암의 3D 조각을 만들어
싱기버스 (Thingiverse)에 내놨어요.
이제 여러분도 제 암을
가질 수 있습니다!
(웃음)
생각해보면 참 좋은 일이에요.
우리 암을 공유할 수 있죠.
그리고 이 일은
과학자, 전통적인 의료 전문가,
여러 연구원들, 의사,
모두가 조언을 주기 위해
저와 연결되었어요.
이 모든 정보와 지지와 함께
전 신경외과의사들과
전통적인 의사,
종양의, 그리고 수백명의
봉사자들과 팀을 꾸려
제가 받은 자료들에 대해
의논할 수 있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죠.
그리고 다같이 저희는
제 치유를 위한 전략을 세웠어요.
여러 언어와 문화에 따라 말이죠.
그리고 현재 전략은 온 세계와
수 천년 인간의 역사를
돌아다니고 있죠.
저에겐 굉장히 놀랄 일입니다.
[수술]
수술 후 MRI에선 운 좋게도
적거나 무성장의 암이 나타났어요.
전 시간을 가져 선택할 수 있게 됐죠.
제가 같이 일하고 싶은
의사를 선택하고
제가 머물고 싶은 병원을 선택하고
그 사이에 수 천명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저를 동정하지 않았어요.
모두들 제가 나아지는데에
도움이 될 일을
할 수 있을거라 느꼈죠.
이게 라 큐라 (La Cura)에서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결과가 어떠냐구요?
전 나아졌습니다.
보시다시피 매우 나아졌죠.
(박수)
아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수술 후 저는
아주 낮은 양의 신경교종을
갖게 됐고,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많이 성장하지 않는
좋은 종류의 암에 속하죠.
전 제 삶과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제가 한 일들 모두 저를
끌어들이려 신중하게 계획됐죠.
아주 고되었던
수술이 끝나기 마지막 몇 분 전까지
전극 행렬이 이 쪽 뇌에 심어졌습니다.
뇌가 무엇을 조종하는지
나타내는 기능적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요.
그리고 수술 직전에
제가 맞이하는 위험요소와
그걸 피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제 뇌의 기능적 지도에 대해
논의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있었습니다.
[개방]
이 개방성이 라 큐라
(La Cura)의 핵심이었어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했고요.
의사들은 평소
암에 대해 생각할 때
좀처럼 상담하지 않는
사람들과 상의하게 되었어요.
제가 직접 찾아냈어요.
다른 언어들이 지속적으로
통역되는 상태이죠.
바로 과학과 감정이 만나고
평범한 연구가 전통적인
연구를 만나게 된 겁니다.
[사회]
라 큐라 (La Cura)의
가장 중요한 점은
매우 열중하고 연결된 사회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느끼는 겁니다.
이 사회의 건강이 모든 사회 요소의
건강에 달려있어요.
이 세계적인 성과가
제 암을 치료한 오픈소스입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기론
저를 위한 치료였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