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엘리자베스" 라는 영화를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우리 모두는 이 위대한 영국의 아이콘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이런 말들을 했죠. " 그녀는 대단한 여자야. 그녀는 모든 걸 해. 우리가 어떻게 그녀를 소개할 수 있을까?" 우리는 프로듀서, 작가들과 함께 스튜디오에 있는 테이블에 모였고, 그들이 저에게 말했어요, "Shekhar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말했죠. " 내 생각엔 그녀는 춤을 추고 있어" 그러자 모두들 날 바라보았어요. 어떤 사람이 "Bollywood (인도 영화산업을 일컫는 말)" 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저 사람 얼마 주고 고용했어?",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다른 감독을 찾아봐요" 라고 말했어요. 저는 제가 바뀌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는 엘리자베스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말했어요, "그래, 내가 너무 Bollywood 스타일인지도 몰라. 엘리자베스와 같은 위대한 사람이, 춤을 춘다고? 도대체 무슨말을 하고 있는거야?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서 우리는 합의점을 찾았어요. 그리고 여기에, 엘리자베스라고 불리는 영국의 위대한 아이콘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레스터: 제가 함께 해도 되겠습니까? 엘리자베스: 괜찮으시다면요. (음악) 그렇습니다. 그녀는 춤을 추고 있었어요.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 그녀가 사랑에 빠진 여자였고, 충분히 천진난만 하였으며 삶에서 커다란 기쁨을 맛보았고, 발랄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 중에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신 분이 있나요? 이것이 바로 시각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의 힘입니다. 이것은 춤의 힘이고, 음악의 힘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의 힘입니다. 제가 영화를 감독할 때, 매번 우리는 너무 많은 준비를 해요.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해요. 지식은 지혜의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경험에 너무 빠져버려 단순한 것들을 놓치고 있어요. 저는 말하죠. "오늘 난 무엇을 하지? 난 내가 계획했던 것들을 하지 않을거야." 그리고서는 스스로를 완전한 혼란속으로 밀어 넣죠. 이것은 스스로의 생각을 없애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이봐, 넌 네가 무얼하는지 알아. 넌 네가 무얼 하는지 정확히 알아. 넌 감독이고, 그런 것들을 수년동안 해왔어" 라고 말하는 저의 생각들을 없애는 것이죠. 그런 다음에 저는 완전한 혼란 속에 같히죠. 대본을 찢어버리는 상징적인 행위를 하죠. 저는 그대로 제 스스로를 혼란속으로 집어 넣어요. 저는 두려워져요. 저는 지금 그러고 있어요. 여러분은 제가 초조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에요. 무슨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러고 싶지가 않아요. 그리고 제가 그러는 동안, 나의 AD가 말하죠, "감독님은 감독님께서 무얼 하시려는지 아시잖아요." 저는 말하죠 "물론 알지." 그리고 스튜디오의 경영진들도 말하죠 "Shekhar를 봐. 그는 준비가 되었어." 저의 내면에서는, 저는 단지 Nusrat Fateh Ali Khan을 듣고 있었을 뿐인데, 왜냐하면 그는 혼란스럽거든요. 저는 제 자신을 혼란속에 빠뜨려요. 왜냐하면 혼란을 통해, 저는 올바른 순간이 오기를 바라고 있거든요. 모든 준비가 준비에요. 저는 그것이 진정 참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해요. 저는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조차 알지 못해요. 유기적으로, 그것에 대한 진리 모두가 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만약 당신의 이야기와, 당신의 영화에서 훌륭하고 유기적인 다섯번의 위대한 순간들을 찾게하게 되면 당신의 관객들은 그것을 알 수 있을거에요. 저는 그런 순간들을 찾으며, 거기에 서 있어요. 그리고 말하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봐요. 아침 7시에 모인 200 명의 그 사람들은 사실 6시 45분에 도착했고, 당신은 7시에 도착했죠. 모든 사람들이 말해요, "감독님, 제일 먼저 무엇을 하나요? 어떤 것을 하게 되나요?" 그러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당신이 알지 못하는 혼란 속으로 밀어넣죠. 그래서 당신은 모르게 되요. 그리고, 당신이 모르기 때문에, 당신은 온 우주에 기도하고 있어요. 당신이 온 우주에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내가 온 우주에 접근하려는 것과 같아요. 아인슈타인이 --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하죠 -- 그의 수식들에 접근한 것 처럼요. 같은 근원이에요. 난 같은 근원을 찾고 있어요. 왜냐하면 독창성은 완전히 같은 근원에서 오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그 근원을 당신의 외부, 혹은 우주 밖 쯤으로 생각하죠. 어떤 것이 와서 당신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래요. 그것이 오기 전까지, 당신은 첫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Kate가 말하죠, "Shekhar, 제가 무엇을 할까요?" 제가 대답하죠, "Kate,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데요?" (웃음) "당신은 대단한 배우에요. 난 당신이 원하는걸 내 배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당신이 원하는 걸 내게 보여주지 않겠어요?" (웃음) 제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저는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어요 저는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다고요. 제가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첫 번째로 배웠고, 항상 따르는 것은, 공포(혼란) 에요. 공포는 독창성에 이르는 훌륭한 방법이에요.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생각을 없애는 단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죠 당신의 생각을 없애세요 당신의 생각에서 빠져 나오세요. 그리고 그 생각이 우주에 이르도록 놔두세요, 왜냐하면 당신의 생각보다 더 올바른 무언가가 거기에 있거든요. 그 곳은 당신의 세계보다 더 참되요. 당신이 어제 말했듯, 난 이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것이야말로 내가 비움의 상태을 찾기 위해서 계속 따르고 있는 것이니까요 비움의 상태가 독창성의 순간을 불러요. 그것이 저의 방식이에요. 제가 어릴 때 -- 내가 8살 정도 되었을 때, 인도가 어땠는지 아시죠? 오염이 없었어요. 델리에서, 우리가 [탓] 혹은 [고타] 라고 부르곤 했던 지역에 살았는데요, [고타] 는 지금은 나쁜 단어에요. 사창가를 의미하죠 --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밖에서 자곤 했죠. 학교에서 물리를 배우고 있을 때였고, 저는 배웠어요. 만약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만약 측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요. 밤에 제가 오염되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을 때, ( 제가 어릴 때 델리는 그랬었어요.) 저는 우주를 바라보며 말하곤 했어요 "이 우주는 얼마나 멀까?" 제 아버지는 의사였어요. 제가 말했어요, "아빠, 우주는 얼마나 멀까요?" 아버지가 답했죠, "아들아, 그것은 영원하단다." 제가 말했죠, "영원한 것을 측정해주세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배우기를,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했어요. 영원은 제 기준 밖의 일이에요." 영원함은 얼마나 멀까요? 영원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전 밤에 그곳에 누워 울곤했죠. 왜냐하면 저의 상상력은 독창적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무엇을 했을까요? 그 당시에, 일곱살의 어린 나이에, 저는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저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 저의 이야기를 기억해요. 한 나무꾼이 있었어요. 그는 도끼를 들어 나무를 자르려고 했죠. 전체 은하는 도끼의 일부분밖에 되지 않아서 도끼가 나무를 내려찍을 때, 그 때 모든 것이 파괴될 거에요. 빅뱅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겠죠. 그러나 이미 그 전에, 또 다른 나무꾼이 있었어요. 전 저의 이야기가 바닥났을 때, 나무꾼의 세계가, 또 다른 나무꾼이 가진 도끼에 속한 일부분일 뿐이라고 상상하곤 했죠. 그래서, 매번, 저는 저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말할 수 있었고, 이야기가 끊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했죠. 제가 어떻게 그것을 했죠?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기란 것이 무엇일까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요.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이에요. 이 우주에서 우리가 존재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런 이중성을 지닌 채 살고 있죠. 우리가 누굴까요? 우리 자신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곧, 우리이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잠재력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이에요. 그것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어요. 이야기는 무한한 세상에서 지금의 당신과, 앞으로의 당신이 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발전시켜 나가는 관계 같은 것이죠.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신화인 것이죠.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말해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죠. 아인슈타인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는 그의 이야기를 따랐고, 이론들을 발견했죠. 이론들을 발견했고, 그리고 수식들을 발견했죠. 알렉산더가 어머니로부터 듣곤 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세상을 정복하러 갔어요. 우리 모두는 각자가 따르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더 멀리 나아갈 거에요. 저는 말하죠, 저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저는 존재해요. 왜냐하면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죠. 만약 이야기가 없다면, 우린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명백히 하기 위해 이야기들을 만들어요. 만약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미쳐버릴거에요. 모르겠어요. 확실하진 않지만, 이것이 제가 항상 해왔던 것이에요. 이제, 영화에 대해 말해볼게요. 영화는 이야기를 해요. 저는 종종 영화를 만들 때, -- 부처님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합시다 -- 생각 하곤해요, 만약 부처님이 감독이 가지고 있는 모든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만약 그가 음악과, 영상과,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가 불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것이 저에게 일종의 부담을 주겠지만 말이에요. 저는 이야기를 해야해요. 조금 더 많이 꾸며서요. 제가 그런 것을 좀 잘 하는데요, 그걸 서브텍스트(작품속에 숨겨진 뜻) 이라고 해요. 제가 제일 처음 Hollywood에 갔을 때, 저는 서브텍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는데, 저의 에이전트가 저에게 말했어요. "서브텍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아주시면 안되나요?" 그래서 내가 왜냐고 물었고, 그는 말했죠. "왜냐하면 당신이 서브텍스트에 대해 말한다면, 아무도 당신에게 영화를 맡기지 않을거에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냥 줄거리랑 어떻게 그 영화를 훌륭하게 찍을 것인지, 영상이 어떨지에 대해서만 말할게요."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찾아요. 우리는 줄거리 면에서 이야기를 찾아요, 그리고 우리는 심리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찾죠. 그리고 우리는 정치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찾고, 우리는 신화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찾아요. 그리고 저는 각각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찾아요. 이런 각각의 이야기들이 서로 조화롭게 맞아 떨어지는건 필요하지 않아요. 훌륭한 영화에선 각각의 이야기들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위대한 음악가인 Rahman과 일할 때, 저는 그에게 말하곤 하죠, "대본에 이미 나와있는 것을 따르지 마세요. 대본에 없는 걸 찾아요. 당신 자신의 진리를 찾으세요 당신 자신의 진리를 찾을 때, 거기에 답이 있을거에요. 그것이 줄거리와 상반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에 대해선 걱정말아요." "엘리자베스"의 후속편, "골든 에이지"에 대해 말해볼게요. 제가 "엘리자베스"의 후속편을 만들 때, 작가가 만든 이야기는 다음과 같아요. 필립 2세에 협박받고 있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여자는 전쟁에 나갔죠, 그리고 전쟁에 나갔을 때, 월터 라일리 경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녀가 월터 라일리 경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여왕의 도리를 포기했어요. 하지만 월터 라일리 경은 그녀의 시녀와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녀는 여왕으로써 전쟁에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어요. 다음은 내가 생각한 이야기에요. 신들이 있었고. 두 사람이 있었어요. 필립 2세가 있었는데, 그는 비범했어요. 왜냐면 그는 항상 기도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비범했던 엘리자베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 스스로가 자신이 비범한 면도 가지고 있고, 인간적인 면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리 많이 비범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녀의 비범함은 올바른게 아니었고, 신들은 말했죠. "좋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쪽면만 돕는거야." 그래서 그들은 한 쪽면만 도왔어요. 그들이 월터 라일리 경을 내려보냈어요. 그녀의 인간적인 면을 정신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서요. 인간으로서의 그녀는 소녀였어요. 월터 라일리 경을 만남으로써, 그는 그녀를 서서히 분리했고, 그녀는 비범함으로부터 벗어났죠. 그리고, 비범했던 두 사람들이 싸웠을 때, 신들은 비범한 편을 들었어요. 영국의 모든 언론들은 몹시 극성을 떨었어요. 그들은 말했죠, "우리가 무적함대를 물리쳤다." 하지만 난 말했죠, "하지만 무적함대를 물리친 건 폭풍이야. 신들이 폭풍을 보내셨어." 제가 무엇을 했죠? 저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신화적인 이유를 만들려고 했어요 물론, 내가 Kate Blanchette에게 이게 무엇에 대한 영화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말하길 나이가 들어가는 어떤 여자에 대한 영화라고 했어요. 심리학적인 측면이죠 작가는 이것을 역사에 관한 것이라고 했어요. 줄거리죠. 저는 말했어요. 이것은 신화, 그리고 신에 대한 것이라고요. 그 영화의 일부를 보여드릴게요. 이 장면에서 제 생각에는 그녀는 인간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녀는 인간스러움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녀가 인간스러움을 가질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녀가 인간스러움의 위험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과 왜 그녀가 인습에 사로잡히지 말았어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기억하세요, 이 영화에서, 저에게는, 그녀와 그녀의 시녀 둘 다 같은 사람의 일부에요. 한편으론 인간적인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정신적이죠. 자, 보실까요? (음악) 엘리자베스: 베스? 베스? 베스 스록모턴? 베스: 여기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말해봐, 그게 사실이야? 아이가 있어? 아이가 있냐고? 네 그렇습니다. 이런 배신자 같으니. 감히 나를 속여? 넌 발정나는 것, 숨 쉬는 것 조차도 내 허락을 받아야 해. 넌 나에게 속해 있다고. 내 말 듣고 있어? 내 말 듣고 있냐고? 월싱검: 여왕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엘리자베스: 자비를 베풀 때가 아니에요, 월싱검. 당신은 당신의 배신자 형제에게나 가 버리고, 내 일엔 간섭하지 말아요. 그의 아이냐? 말해. 말하라고. 그의 아이야? 그의 아이냐고? 베스: 네. 아씨, 제 남편의 아이입니다. 엘리자베스: 나쁜년! (울음) 라일리 경: 여왕이시여. 지금 여왕님의 모습은 제가 사랑하고 따르는 여왕님이 모습이 아니십니다. 엘리자베스: 이 남자는 여왕의 시녀를 유혹했고, 그녀는 왕가의 허락 없이 결혼했다. 이런 죄는 법에 의해 처벌된다. 그를 체포하라. 어서. 너는 더 이상 여왕의 보호아래 있지 않다. 그렇게 하세요, 여왕마마. 엘리자베스: 나가! 나가! 나가! 나가. (음악) 자, 내가 여기에서 보이려는 것이 무엇이죠? 엘리자베스는 깨달았어요, 그녀는 그녀 자신의 질투심과 인간스러운 면에 맞닥뜨렸어요. 구조물은 무엇을 할까요? 구조물도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구조물로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녀가 비록 그 시대에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여성이었을지라도, 그녀보다 더 큰 존재가 있어요. 여기선 구조물로 나타난거죠. 돌이 그녀보다 크게 나타나요, 왜냐하면 돌은 무생물이고 그것은 그녀보다 오래 남을거니까요. 저에게는, 그것이, 그녀 운명을 보여주는 것과 같아요. 그건 그렇고, 왜 카메라가 아래쪽을 향할까요? 카메라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녀가 우물속에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인간적인 면에서 절대적인 우물 안에 있어요. 거기서 그녀는, 자신의 인간스러운면을 내 보여야 해요. 비범한 면은 버리구요. 제 생각엔, 이 순간이야말로 엘리자베스와 베스가 둘 다 같은 사람인 순간이고, 하지만 동시에 엘리자베스가 정확히 그녀 자신을 없애기도 하는 순간이죠. 영화는 이 장면에서 여러가지 많은 면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가 시각적으로, 음악과 배우들을 사용해서 각자의 시각에서 서로 다르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 모순이기도 한 이야기를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시작할까요?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란게 무엇일까요? 약 10 여년 전에, 저는 한 정치인에게 다음과 같은 짧은 이야기를 들었죠. 인도에서 그렇게 존경받는 정치인은 아니었죠. 그가 말하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한 번에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이틀을 쓰고도 남을 만큼의 물을 사용해요. 저의 심금을 울렸죠. 저는 "네 맞아요"라고 답했어요. 제가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는데, 저는 친구를 기다렸어요. 그의 아파트는 Malabar Hill에 있었고, 20층에 살았죠. Mumbai 에서 아주아주 부자동네에 있는 아파트였어요. 그는 20분동안 샤워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기다리다 지겨워서, 나왔어요. 저는 Bombay의 슬럼가를 지나갔어요. 여느때처럼요. 그리고 한낮의 태양 아래 긴 줄이 늘어져있는 걸 보았어요. 양동이를 든 여자와 아이들이 물탱크에서 물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디어가 전개되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어떻게 그것이 스토리가 될까요? 저는 갑자기 우리 모두가 재앙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아요. 제 다음 영화는 "Paani"라고 불리죠. 그것은 물을 의미해요. 그리고 지금, 신화와 더불어 저는 세상을 만들기 시작해요. 제가 어떤 세상을 만들까요? 그것에 대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어디서 올까요? 제 생각에는, 미래에는 그들은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다리란 것을 이해 하시나요? 그들은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A에서 B까지 조금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상대적으로 잘 사는 곳에서 다른 잘 사는 동네로 갔죠. 그러고 나서, 그들이 한 것은 다리 위에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부자들은 위쪽 도시로 옮겨갔어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래쪽 도시에 남겨졌고요. 약 10~12%의 사람들이 위쪽 도시로 옮겨갔어요. 자, 위쪽 도시와 아랫쪽 도시가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인도에는 신화가 있어요 제가 힌두어로 말할거에요. [힌두어] 좋아요.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부자들은 항상 어깨 위에 앉아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 위에서 산다는 말이에요. 신화에 따라, 윗쪽 도시와 아랫쪽 도시가 나오는 것이에요. 이렇게 디자인은 이야기를 갖게 되죠. 그리고 나서, 위쪽 도시의 사람들은 모든 물을 빨아들어요.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 빨아 올린다 그들은 모든 물을 빨아들이고, 그들 자신을 위해 보관하죠. 그리고 아랫쪽 도시들을 먹이기 위해 물을 조금씩 흘려보내다가 만약 어떤 혁명이라도 일어나면, 물을 끊어버려요. 그리고, 아직 민주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민주적인 방법으로 말해요. 당신이 내가 원하는 어떤 걸 주면, 내가 물을 주겠다고 말이죠. 좋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요. 하지만 여러분에게 계속 이야기 할 수 있어요 영화에서, 우리가 어떻게 스토리들을 발전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야기들이 효과적으로 우리를 나타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것들이 특별한 규칙으로 나타나는지 말이에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야기가 뭐죠? 그건 모순이에요. 모든 것은 모순이에요. 우주는 모슨이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조화로움을 찾고 있어요. 우리가 일어날 때, 밤과 낮은 모순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새벽 4시에 일어나면 그 때 보이는 푸르스름함은, 밤과 낮이 서로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에요. 조화로움은 모짜르트가 여러분에게 주지 않은 것이에요. 어찌된 일인지, 모순된 그의 음들은 말하고 있죠 모든 모순된 그의 음들은 조화로움을 말하고 있어요. 그것은 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모순에서, 스토리텔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모순에서 조화를 찾은 결과에요. 스토리텔러 마음은 인간의 모순이고, 시인의 마음은 단어들의 충돌이에요. 우주의 정신에서. 낮과 밤 사이에 남자와 여자의 마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의 모순을 보고 있으면서 우리는 서로와의 조화로움을 찾고 있어요. 모순에 대한 모든 아이디어, 그러나 모순에 대한 수용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에요.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많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문제점은 우리가 모순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는 거에요. 조화로움은 결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조화는 결정하는 것 보다 더 큰 어떤것에 대한 제안이에요. 조화는 받아들임이고, 영원과 현재의 보편적인 어떤 것에 대한 제안이에요. 결정은 훨씬 많이 제한된 것이죠. 유한한 것이에요. 하지만 조화는 무한해요. 스토리텔링은, 우주의 다른 모든 모순들처럼, 조화로움과 무한함을 찾고 있어요. 도덕적인 해결 방안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고, 다른 것은 잊어버려요. 다른 것을 잊어버리고, 매우 중요한 질문을 만드는 것이죠.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