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직은 종종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리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그러한 강력한 권한을 남용하였다고
비난을 받은 미 대통령이 많았지만
그 일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경우는
오직 한 사람 뿐입니다.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했던 스캔들 외에
기억될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닉슨 대통령의 수치스런 유산을 둘러싼
이런 논쟁을 짚어보기 위해
'역사 대 리처드 닉슨'이라는
모의 재판을 열어 보겠습니다.
재판장: 정숙하도록 지시합니다!
정숙하도록 지시합니다!
오늘의 피고는 누굽니까?
사기꾼인가요?
변호인: 에헴! 아닙니다, 재판장님!
피고 리차드 밀하우스 닉슨은
제 37대 미국 대통령으로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재직했습니다.
잠깐만요!
대통령직으로 어떻게 그런 기간
동안 재직할 수가 있었죠?
닉슨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사임을 했고
그의 뒤를 이은 포드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검사: 국익을 위한 사임이 아니라
탄핵이 임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가 모두
밝혀지는 걸 원치 않았던거죠.
재판장: 그렇다면 그는
어떤 죄를 저질렀나요?
검사: 재판장님!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건 중에서
역사상 가장 지저분한
사례에 해당됩니다.
닉슨의 부하들이 민주당의
전국위원회 본부로 잠입해서
사무실을 도청하는 방법으로
캐낸 상대방의 비리를
재선에 유리하게 활용했던 겁니다.
변호사: 에헴!
대통령이 직접 사주한 일이 아니란
사실은 이미 밝혀졌습니다.
검사: 하지만 이를 알고서, 그는
모든 수단을 써서 사실을 감추었고
몇달 동안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그래요, 하지만 그건
모두 국익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재직시에 많은 일을 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스캔들로 인해 자신의 모든 업적을
더럽히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죠.
재판장: 업적이라고요?
변호사: 그렇습니다, 재판장님!
혹시 아셨나요, 닉슨 대통령이
환경보호청을 세우자고 제안을 했고,
전국 환경정책 특별법을 비준했고,
멸종생물 특별법과
해양포유류 보호 특별법,
대기 정화 특별법을
확대한 사람이라는 것을요?
재판장: 꽤 진보적인
성향이었던 것 같군요.
검사: 진보적이라고요?
그럴리는 거의 없습니다!
닉슨이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할 때
남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진보적 인권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반감을 되려 조장했는걸요.
변호사: 인권 문제를 언급하셔서
드리는 말입니다만.
헌법 개정안 9조에 닉슨이 서명한
사실을 검사측이 알면 놀라시겠네요.
이로써 성별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교육적 차별이 금지되고
교내 인종차별 철폐정책이 평화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었잖아요.
또한 선거가능연령을 18세로 낮춰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요.
검사: 그런 사람이 정작 그 학생들은
나 몰라라 했군요.
켄트 주에서 국토방위군에 피격된
네 명의 학생들 말입니다.
그 때 그는 그 학생들이 월남전을
반대하는 놈팽이들이라고 비난했죠.
월남전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선거 운동을 하던 사람이 말이죠.
변호사: 하지만 정말 전쟁을
끝낸 건 사실이잖습니까?
검사: 취임한 지 2년이나
지난 후에 끝낸 것 말인가요?
선거운동 동안에는 당시 대통령의
평화협정에 도리어 훼방을 놓았죠?
나중에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테니
기다리라고 월남정부를 설득하면서요.
그 약속, 참고로 말씀드리면,
실현되지 않았고요.
그런 식으로 그는 월남전을
4년이나 더 연장했어요.
그 사이에 미군 2만 명과
백만이 넘는 베트남인들이
무의미하게 더 죽어가야 했죠.
지판장: 음, 대통령 후보자가
외교적 교섭에 끼어들었다니
그건 반역 행위 아닌가요?
검사: 맞습니다, 재판장님! 1799년
제정된 로건법에 분명하게 위배됩니다.
변호사: 다들 닉슨 대통령의
외교 정책적 성과에 대해
너무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분이 이룬 중국과의 관계정상화 덕에
경제적 협력관계가 유지되어 오고 있죠.
검사: 그게 유익한 일이었다고
정말 확신해도 될까요?
또한 칠레에서 발생한 쿠테타를
그가 지지했던 사실도 잊지 마시죠.
그 때문에 민주적으로 선출된
알란데 대통령이 밀려나고
군인 출신의 폭력적인
독재자가 집권을 했잖아요?
그건 공산주의와 싸우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겁니다.
애초에 폭군과 폭력이 싫어서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게 아니었나요?
혹시 서민들이 부유층에 반대해
봉기할까봐 두려웠던 건가요?
설마 닉슨 대통령께서 피노쳇 정권의
폭정을 예측했으면서도 지지했겠습니까?
또 반공주의자라고해서 무조건
서민들을 등안시하지도 않았거든요.
그는 미국 내 모든 가정에 기초소득을
보장해 주는 정책을 제안했고
이는 여전히 급진적인 사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포괄적인 의료보장정책을
밀어 붙였는데
그게 실제로 통과되기까지
40년이나 걸렸고요.
재판장: 본인은 이자의 혐의에 대해
여전히 혼란스럽군요.
그가 범법자란 말입니까?
아니란 말입니까?
변호사: 재판장님! 닉슨 대통령이
몇가지 법률을 위반한 건 사실이지만
재임중에 이룬 업적과 비교해 그게 뭐
그리 큰 허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검사: 그가 민주주의 자체에
해를 끼쳤는데도요?
닉슨이 대외적으로 표방했던
자신의 원칙
즉, 지도자로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책임을 다하겠다던 약속은
그가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법 위에 군림하고자 했을 때
공염불이 되고 말았죠.
재판장: 그런 자를 처벌하지 못한다면
내가 법복을 벗어야겠지요.
많은 정치가들이 성과를 내세워
원칙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법을 어기고 이를 감추려는 작태야말로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은
역사적 심판을 통해
그 실체를 명명백백히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